안녕 사막
조미희
안녕, 사막
알 바 없는 너의 갈증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선택은 선택을 부르고
안녕, 사막
가끔 땅은 기침을 하며 나를 내뱉곤 하지
엎질러진 태양의 잔해를 앓고 있는
사막에 남겨진 이빨자국
우직 몸을 꺾어 거품을 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함부로 탕진해버린 햇살과 바람과 물과 사랑의 말씀들
결심한 듯 벌컥벌컥 내 푸르름을 탐하던
도시를 활보하고 돌아온 황사
모래안개 속 사막은 아직 풋내가 나
단물 다 빠져나가 쪼그라진 욕망의 마지막 고해라고?
천만에, 나는 지금
높이 솟은 구리 뱀이 된 거야
안녕, 사막
너는 뿌리내릴 수 없는 사막의 뼈
누군가 이 견고한 중심에 송신탑을 세우고
비밀번호로 잠긴 모래알들을 깨워 누각을 짓고 있어
점점 좁아지는 막다른 골목의 끝엔 언제나
솟아 날 그 무엇이 있지
안녕, 사막
괜찮아,
괜찮아,
내가 너의 사막이 되어 줄게
// 졸작에 조미희 시인께서 시를 붙여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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