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담

좋은 사진 찍기 - 피사체와 교감하라

서기오 2021. 11. 12.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것은 십여 년 됐지만, 원래 재능이 없는 건지 내가 그다지 사진을 잘 찍는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많이 찍기 때문인지 가끔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책에 나와 있듯이 "많이 찍으세요" 외에는 딱히 답을 하기 어려운 게 대부분이다. 질문 자체가 막연하니까.

   사진을 그동안 찍어오며, 그리고 공부하며 책에 나오기도 하고, 체험으로 얻기도 한 내용들을 하나씩 정리해볼까 한다. 공부야 죽는 날까지 계속될 테고, 글은 한두 번 쓰고 말 가능성이 크기는 하지만...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피사체와 교감해야 한다.

   그래서 동적인 현장에서 찍은 사진은 좋은 게(건질만한 게) 많다.

   그 이유는 현장의 역동적인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고, 그 현장에 촬영자가 몰입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터나 시위현장을 찍은 사진은 현장감이 더 있는데, 작가도 그 현장 속의 한 사람이 되어 셔터를 눌렀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적인 현장의 사진은 좋은 사진 얻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결혼식 사진들을 보면 구도나 노출 이런 것이 잘 맞았어도 사진에서 별 감흥을 느낄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가 돌 사진들은 괜찮은 사진들이 많다.

   그 차이는 결혼식 사진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잘 짜인 순서대로 질서 있게 움직이기 때문에 작가(사진사)는 괜찮은 장면을 잡는 데만 몰두할 뿐 신랑 신부나 하객의 기쁨에는 동조 되지 않는다.

   반면 아가들은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웃게 하려고 장난감도 흔들어 주고 아가 앞에서 재롱도 부리고 하면서 작가가 아가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는 과정을 통해 아가와 교감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혼식 사진은 좋은 사진이 많지 않아도 돌사진은 좋은 사진이 많은 거다. (기술적으로 좋은 사진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만약 돌사진을 맡겼는데, 사진 속 아가에게서 별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사진사가 그냥 일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 잘 찍은 돌(?!)사진 ⓒ  http://www.emuseum.go.kr/relic.do?action=view_d&mcwebmno=100874


   흔히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진은 똑같은 상황에 똑같은 장비면 누가 찍어도 똑같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사진을 배운 후 실력이 부쩍 늘다가 더는 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 때 사람들은 장비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하는데, 그건 쓸 데 없는 낭비일 뿐이다.

   좋은 장비가 좋은 사진을 찍기 편리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좋은 장비가 좋은 사진을 만들지는 않는다.


   나는 여행을 가면 그 지방의 공동묘지를 꼭 들르곤 한다.

   공동묘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나라고 공동묘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첫째 공동묘지에 가면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인생공부가 조금은 된다.

   그리고 한국과 달리 아르헨티나의 공동묘지는 형형색색의 묘지들로 촬영소재도 많다.

   나는 공동묘지에서 어떤 묘지를 촬영할 때에는 그 묘의 주인과 대화한다. 사실 독백이지만 대화처럼 한다.

   "편히 쉬시는데 제가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묘가 예뻐서요. 제가 사진 좀 몇 장 찍을게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금방 끝나요"

   그걸 누가 듣는다면 미친 게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묘지의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팎을 찍는다.

   그리고 다 찍고 난 후에도 고맙다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고 그곳을 떠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찍은 사진 가운데 마음에 드는 묘지 사진이 여럿 있었다.


   꽃을 찍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묘지와 마찬가지로 꽃도 의사소통되지 않는 존재이지만 나는 혼잣말로 꽃과 대화한다.

   "너 참 예쁘구나. 이렇게 예쁜데 왜 사람들은 들꽃이라고 널 천대할까? 어디 예쁜 널 더 예쁘게 찍어볼까?" 그러면서 찍는다.


   요점은 피사체와 내가 동화하지 않으면 그냥 기계로 기계적 사진을 찍은 것밖에 안된다.

   그렇게 사진을 찍으면 아무리 멋진 관광명소에서 장관인 장면을 찍어도 그저 그런 밋밋한 사진밖에 안 나온다.


   전에 축구경기장에 갔는데, 한 동생이 어떻게 하면 경기장면을 잘 찍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같이 뛰라고 했다.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크게 뜨는 그 친구에게 "슛하는 장면을 잡고 싶으면 슛을 해야 하는 거야. 근데 슛을 언제 할지 어떻게 알겠어? 같이 뛰는 수밖에"라고 했고, 여전히 그 친구는 이해하지 못했다.

   좋은 망원이나 초망원렌즈 삼각대에 걸쳐놓고 감각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해진 촬영 포인트에서 공을 가진 선수와 같이 뛰는 상상으로 경기에 참여해야 좋은 경기사진을 찍을 수 있다.

   공격수를 찍을 때에는 공격수가 되어 공을 드리블해야 하고, 수비수를 찍을 때에는 어떻게든 그 공을 뺏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여야 한다.

   경기 내내 내 눈과 뷰파인더, 렌즈는 하나가 돼서 움직여야 한다. 눈으로 보다가 이때다 싶어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 웃통 벗고 세리머니 하는 선수는 찍을 수 있다.

   선수가 다음 이동방향이나 동작을 계산하듯 똑같이 작가도 이동방향과 동작을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슛을 해야 할 기회라고 느끼는 순간 셔터를 누른다.

   그냥 선수를 보다 슛하는 순간에 셔터를 누르면 공은 이미 골대를 지나가고 있거나 네트를 흔들고 있다. 사람의 손은 눈만큼 빠르지 못하기 때문이고, 눈이 본 것을 뇌가 손에 명령하고 셔터가 1/250초로 작동하는 시간은 너무 길다.

   그냥 마구 셔터를 눌러도 괜찮은 사진이 걸릴 때가 있지만, 그런 사람들 사진가,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많이 찍어야 한다. 수 없이 셔터를 눌러야 하지만, 그 이유는 단 한 장의 내가 노린 사진을 위해서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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